김형표 / 나의 왼손 농장 농부

보통은 4시에 일어난다. 보통은 7시에 잠이 든다. 7과 4 사이 9가 잠들어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제외한 15는 대게 일에 몰두한다. 당근껍질을 벗기기도 하고, 밭을 갈기도 하고, 쥬스용 당근을 선별해 납품을 하기도 한다.

하루에 한가지 일만하면 좋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황금향 묘목의 불필요한 순을 따주는 동안 화성인들은 나무마다 한줌의 비료를 주고, 고랑의 풀들을 뽑는다. 풀이 너무 많아 뽑은 풀을 고추 옆에 늘어놓기도 하고, 더러는 리어카에 실어 밖으로 내보낸다. 이것은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농작업이다.

반면에 작업이 밀릴때는 두개의 공간에 다른 작업을 배치한다. 하천리 하우스 작업과 수산리 창고작업을 병행하는 일이다. 창고에서는 당근을 선별 포장하고, 비상품은 세척해 껍질을 벗기고, 부산사나이 세희는 알류미늄 빈켄에 스티커를 붙여 세척하고, 보냉재에 물을 집어 넣는다. 며칠전에는 06시부터 17시까지 하루종일 보냉재에 물을 채웠다.

모든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다. 현재 해야하는 일들중 가장 중요한 일을 선택한다. 그 우선순위는 재배하는 작목에 따라 작물의 상태에 따라 매일매일 바뀐다. 작업을 하다가도 더 중요한 일이 생각나면 과감하게 작업을 중단하고 일정을 변경한다.

올봄에는 감자, 비트와 초당옥수수, 단호박과 고추, 들깨와 여주 7개의 작물을 키우기로 했는데 아직 시기가 이른 들깨와 여주를 제외하면 모두 파종해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다. 그 사이 사이 밀감과수원 전정과 비료살포, 한라봉이나 레드향 등의 만감류 가지 전정과 비료살포 친환경 방제등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정진씨의 밀감과수원 조성과 나의 밀감과수원 조성을 위해 500여 그루의 묘목을 포크레인으로 판후 차에 실어 밭으로 옮겨 모두 식재했다. 비가 오면 오는대로 옷을 적시며 나무를 심었고, 계획처럼 작업이 진행되지 않으면 어둠이 올때까지 나무를 심었다. 이 밀감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새순을 피워내면 다시 나무를 다듬어 주어야 한다.

나무를 키우는데 사람의 손이 필요한것은 생각보다 나무들이 어리석고 자주 싸우기 때문이다. 또 열개의 가지가 있으면 뿌리는 모든 열개의 가지에 공평하게 에너지를 분배하기 때문에 열개중 두개나 세개의 가지를 남겨 에너지가 집중되게 해줘야만 나무가 굵어지고 더 힘이 세진다. 열매는 그 다음이다. 특히 친환경재배는 나무의 힘을 강하게 키우지 못하면 나무가 죽어버려 오히려 더 많은 손길이 가야만 한다. 가위와 톱을 들고 인부들이 다른 곳에서 일하는동안 조용히 과수원에 다녀온다.

구좌읍에 새로 임대한 5,000평 농지는 무상임대다. 지목이 전인 이 농지는 30년 이상 농사를 짓지 않아 거대한 숲이 되어버렸다. 그 숲을 없애고 다시 작물이 자라는 농지로 바꾸는 작업은 대단위 작업이고, 무상인 대신 내가 해결해야한다. 목재상에 연락해 필요한 나무를 모두 베어가는데 2주가 걸렸고, 다시 잔가지와 나무뿌리를 걷어내는데 2대의 포크레인이 일주일을 일했다. 그렇게 모아진 폐목재는 파쇄로 방향을 잡았었다.

포크레인만한 큰 파쇄기의 하루 임대료는 440만원, 그러나 일곱 덩어리의 목재더미에서 하루에 겨우 한덩어리를 톱밥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결국 하루만 작업하고, 밭의 한쪽구석으로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밀어넣었다. 2대의 포크레인과 25톤 덤프 1대, 15톤 덤프 2대로 총 5대의 중장비를 이용해 이틀에 걸쳐 구석으로 밀어넣는데 성공했다. 하루 작업비는 280만원.

이제 마지막으로 밭둘레로 거대한 수로를 만들어 홍수에 대비하고, 다져진 흙을 잘게 만드는 일주일간의 포크레인 작업이 남았다. 예정 작업료는 다시 500만원. 이야 정말 돈이 많이드는군요. 네 3천만원쯤 드는것 같아요. 그래도 회사소유라 특별한 일이 없는한 계속 사용이 가능할거고, 연간 300만원짜리 임대료를 10년치 선납했다고 생각하면 되죠. 앞으로 열흘만 비가 오지 않는다면 거대한 양질의 농지가 생겨난다. 다만 그 현장을 자주 가보지 못하고 수시로 전화로만 상황을 체크했다. 포크레인 기사 강필승이는 그냥 다 알아서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두번 작업할 필요가 없이 세심하고 꼼꼼하게 그리고 사나운 파도처럼 포크레인을 밀어붙일즐 아는 친구다.

알고보면 나와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명 자립형 완성체들이다. 내가 있거나 없거나 자신의 일을 하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할즐 아는 사람들이다. 당근을 깎는 삼춘들도, 묵묵히 하루를 채우는 정진씨도, 화성인 인부들도 다 그렇다. 나는 그냥 내가 희망하는대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지만 확인하며 내가 해야할 일들로 집중력을 높일 뿐이다. 그래서 4곳의 현장에서 작업이 진행되든, 20명의 사람이 작업하든 별다른 문제가 없다. 믿을만한 사람들과 일하는 즐거움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한 사람들과는 접점이 없다. 그들의 삶을 나의 잣대로 평가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들이 열심히 사는 삶의 즐거움같은 것을 모른다는 것은 안타깝기도 하다. 하우스에서 레몬나무나 레드향 나무 앞에 앉아 가지들을 살펴보며 불필요한 가지들을 찾아내 제거하는 일에 집중하다보면 하루가 금방간다. 가끔은 지금은 불필요한 가지들을 일부러 남겨두기도 하는데, 그 가지의 쓰임새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잎을 피워 광합성을 하며 뿌리를 키우고 그 힘이 다시 나무가지와 잎으로퍼지는 상호작용이 전문인데 그 불필요한 가지의 잎이 만들어내는 태양광학의 힘이 필요할때 불필요한 가지를 남겨둔다.

내년에는 잘라야지 하면서 남겨뒀던 가지들은 간혹 변화무쌍한 생명의 힘에 의해 반드시 필요한 줄기로 성장하기도 해서 과일나무의 전정은 사실은 정답이 없다. 백명의 사람이 각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무를 키울때 백가지의 전정법은 모두 옳다. 가지가 자라 굵어지고 찬란한 열매를 달아내는 나무가 되었다면 말이다. 비교적 신중한 접근을 하는 정진씨가 나무 앞에서 망설이길래 망설이지 말라고 했다. 너가 옳고, 설사 틀려 실수했다치더라도 내년에는 그 실수가 만회되니까. 애정하고 과감히 나무에 다가가. 그래야만 너의 나무를 만들수 있어.

오늘은 두곳의 하우스를 완벽하게 정리한 바람에 삽과 곡갱이를 두들겨 새로운 이랑 세개를 만들었다. 하우스의 좌우로 나무를 심은 사이에 아직은 나무가 자랄때까지 쓸수 있는 여분의 공간이 있어, 그곳에 탱자씨를 뿌려 탱자묘목을 만들기 위해서다. 작년에 뿌린 탱자씨는 잘 자라 이제 며칠 후면 들판의 어느 밭 하나에 심어질 것이다. 탱자나무공작단을 창립한 이후로 첫번째 성과다.

그리고 3년 후의 레드향을 신청하신 분들에게는 내년부터 공급이 가능할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드리며, 밀감나무 원정대에 참여하신 분들에게는 2년 동안의 밀감밭 조성이 완료되어 드디어 밀감나무 300여 그루를 심는 목표에 일단은 도달했다는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15년만에 저도 제 밀감밭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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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사람생각은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일원 5만여평의 경작지에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장이다. 감귤 농사를 기본으로 봄에는 단호박과 비트, 생으로 먹는 "초당옥수수" 봄무등을 재배한다. 가을에는 월동무와 배추, 콜라비, 브로콜리, 칼리플라워, 비트, 양배추, 방울양배추 등을 심는다. 12월부터는 순차적으로 수확이 가능하며 일정 시점이 되면 모듬 채소가 등장하여 8가지 이상의 채소를 꾸러미로 배송한다. 5월에는 착즙하여 싱싱한 당근주스를 배송받을 수 있다.